‘부동산 연착륙’ 위해 ‘文정부 과잉 규제’ 모두 해제…“가계 부채 자극할까” 우려도
尹 주재 비상경제회의서 부동산 시장 연착륙 방안 논의
규제 지역 추가 해제 검토…LTV 규제도 정상화
文정부 규제 손질…얼어붙은 시장에 ‘훈풍’ 불까
고금리 상황서 가계부채 뇌관 때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정부가 27일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발표한 부동산 거래 활성화 대책은 실수요자 보호와 거래 활성화에 방점을 두고 있다.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 이후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우려가 커지면서 자금 시장이 얼어붙고, 금리 인상으로 부동산 시장이 ‘거래 절벽’에 맞닥뜨리게 된 상황에서 원활한 주택 거래를 가로막는 규제를 완화해 부동산 시장의 ‘연착륙’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분양 등 부동산 시장은 거래가 끊겨 한파가 불고 있다. 지방은 물론 주택 수요가 몰리던 수도권에서도 미분양 사태가 발생하며, 전국적으로 미분양 물량이 쌓여가고 있다. 여기에 두 자릿수 이상의 경쟁률을 뚫고 청약에 당첨된 사람들이 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 부담으로 계약을 포기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 文 정부의 부동산 규제 대폭 손질
정부는 이 같은 실수요자의 주거 이동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청약당첨자의 기존주택 처분기한 연장 ▲중도금 대출 보증 확대 ▲금융 규제 정상화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정부가 완화 대상으로 지목한 규제는 모두 문재인 정부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 임기 동안 집값이 폭등한 이유로 지나친 규제를 꼽아 왔다. 다만 급격하게 규제를 풀면 시장을 자극할 수 있다고 보고 속도 조절을 해 왔다. 하지만 최근 금리 인상 속에 부동산 시장이 예상보다 빠르게 얼어붙자 시장 연착륙을 위해 대대적인 규제 완화책이 필요하다고 보고 드라이브를 걸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는 우선 투기과열지구 등에서 청약에 당첨된 1주택자의 기존주택 처분기한을 6개월에서 2년으로 연장하기로 했다. 현행 제도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의 청약 당첨을 방지하고자, 1주택자의 경우 기존 주택을 6개월 내 처분하는 것을 조건으로 청약 기회를 제공한다. 문제는 최근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기존 주택 처분이 쉽지 않아졌다는 점이다.
이에 주택 처분 기한을 2년으로 늘려 신규 분양 주택 입주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주겠다는 게 정부 생각이다. 정부는 특히 이날까지 처분기한이 도래하지 않은 기존 의무자에게도 처분기한 연장 혜택을 소급 적용하기로 했다. 주택 처분 규정을 지키기 위해 기존 주택을 급매로 시가보다 싸게 내놔야 했던 사람들의 숨통을 틔우는 조치가 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집값 하락 시기엔 청약당첨자의 기존 주택 처분이 어려울 수 있어 필요한 제도”라고 말했다.
중도금 대출 보증도 확대하기로 했다. 현재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주택금융공사(HF)의 중도금 대출 보증은 분양가 9억원 이하 주택에만 적용된다. 분양가가 9억이 넘는 주택에 대해선 이들 기관의 중도금 대출 보증이 나오지 않아 일부 시행사들은 ‘자체 보증’ 방식으로 풀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자금시장 경색으로 건설사들의 돈줄이 마르면서 시행사들의 자체 보증 부담이 커졌다. 이에 정부는 HUG의 내규와 HF의 지침을 개정해 12억원 이하 주택까지 중도금 대출 보증을 하도록 할 계획이다.

◇ 수도권 투기과열지구 풀리나…15억 초과 주택도 주담대 허용
국토부는 다음 달 주거정책심의위원회를 열어 규제지역 추가 해제를 검토한다. 앞서 국토부는 지난달 21일 조정대상지역 101곳 중 41곳, 투기과열지구 43곳 중 4곳을 해제한 바 있다. 국토부 주정심이 두 달 만에 열리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지난달 규제지역 해제 발표 후 수도권 지자체에선 미분양 물량 확대 등 부동산 경기 위축을 호소하며 규제지역 해제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현재 투기과열지구는 9억원 이하 아파트 40%, 9억~15억원 20%, 15억원 초과 0%의 주택담보대출비율(LTV) 규제를 받고 있다. 조정대상지역은 9억원 이하 50%, 9억원 초과 30%로 LTV가 제한된다.
이 같은 대출 규제는 조정지역의 주택 거래를 가로막는 허들이 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지난달 주정심에서 조정대상지역은 대폭 푼 만큼, 다음 달 주정심에서는 수도권의 투기과열지구 해제가 핵심 의제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는 이와 함께 무주택자와 1주택자(기존 주택 처분 조건)에 대해선 LTV를 50%로 일괄 완화하기로 했다. 무주택자 등이 주택 구입 시, 규제지역 여부와 주택 가격과 무관하게 구입비용의 50%까지 대출을 해주겠다는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DTI는 엄격하게 보더라도, LTV에 대해선 좀 더 유연하게 다룰 필요가 있었다”며 “그런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했다.
정부는 주택담보대출이 금지된 15억원 초과 아파트에 대해서도 내년 초부터 주택담보대출을 허용할 방침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15억원이 넘는 주담대도 허용하겠다”면서 “국토부와 협의해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이은형 연구위원은 “15억 초과 아파트에도 LTV 50%을 일괄 적용한다는 것은 매우 파격적”이라며 “이전 정부가 제시한 근거가 뚜렷지 않던 고가주택 기준(9억 15억 원)이 폐기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 “세계 최고 수준 가계부채 뇌관 터질 수도”
정부의 이번 부동산 규제 완화 결정에 우려도 적지 않다. 한국 경제의 뇌관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가계부채를 더 자극할 수 있다는 시각에서다. 채상욱 포컴마스 대표는 “대출 문턱을 낮춰주는 긴급 처방이 부동산 경기 활성화에 효과적일 수는 있지만, 길게 보면 가계부채를 더 키워 또 다른 사회·경제적 부작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세계 최고 수준인 나라”라고 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계부채 총액은 작년 말 기준 1860조원이다. 국제금융협회(IIF)가 지난 5월 발표한 ‘세계 부채 모니터링’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4.3%로 조사 대상 36개국 중 가장 높았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0을 넘는 나라 자체도 한국이 유일했다.
날로 상승하는 기준금리 때문에 가계부채 부담도 점점 커지고 있다. 기준금리가 올라가면 금융기관의 자금 조달 비용이 늘고, 이는 결국 시장 금리 인상으로 이어진다. 한국은행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강준현 의원에게 제출한 가계부채 현황 자료에 따르면, 기준금리가 0.25%포인트(p) 오르면 전체 대출자의 이자 부담은 3조3000억원가량 늘어난다.
김성은 세종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리 상승과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상환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규제 완화로 대출이 늘면 금융 부문 취약성이 도드라질 우려가 있다”며 “소득이 안정적이고 상환 능력이 확실한 사람 위주로 대출이 이뤄지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당분간 금리 인상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는 점에서 부동산 규제 완화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정부는 부동산 실수요자를 중심으로 규제를 풀어 거래 절벽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생각이지만, 금리가 계속 오르고 부동산 가격은 하락하는 상황에서는 거래 활성화는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