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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아웃법 5년 만에 ‘아웃’ 위기… 부실기업 하반기 줄도산 우려

지은찬 2023. 8. 14. 11:20

워크아웃 근거법인 기촉법 일몰 연장 논의 불발
법원행정처 ‘위헌 소지’·감사원 ‘면책 과도’ 의견
워크아웃법 공백 시 유동성 위기 기업 줄도산 가능성

 

 

 

                            서울 서초구의 한 법률사무소에 파산 등 법률 상담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채권단 주도의 기업 구조조정 제도인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작업)이 오는 10월 중단될 위기에 놓였다. 10월 15일 워크아웃의 근거가 되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이 일몰될 예정인데,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법무부와 감사원에서도 법안 연장에 반대 의견이 나오고 있어서다.

 

기촉법 연장이 일몰 시한을 넘길 경우 구조조정 업무 공백이 발생해 유동성 위기에 놓인 기업들이 줄도산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4일 금융 당국과 국회 등에 따르면 법원행정처와 감사원은 국회 정무위원회에 일몰 기촉법 연장에 대한 반대 의견을 담은 의견서를 제출했다. 기촉법 일몰 연장 때마다 관계 부처 간 이견이 있었지만, 올해는 여당인 국민의힘이 연장을 추진하는 데도 부처 의견 조율이 되지 않고 있다.

 

법원행정처는 기촉법 연장에 대한 의견서에 ‘재산권과 평등권, 사적자치 침해 등 위헌 소지가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협약에 따라 자율적으로 이뤄져야 할 워크아웃을 법으로 강제한다는 점과 워크아웃 대상 기업에 제한을 둔다는 점이 위헌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금융사들의 채권단협의회 가입을 의무화하고 개별 금융사 의견과 무관하게 협의회가 다수결로 워크아웃을 결정하는 문제는 금융기관의 사적자치 영역을 침해한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일부에서는 기촉법이 관치금융의 수단이 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기촉법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는 2001년 기촉법 도입 이후 여섯 차례 일몰과 연장을 반복하면서 위헌 소지를 상당 부분 해결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법원행정처는 여전히 기촉법이 위헌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법원행정처가 서울에 이어 부산과 경기 수원에 회생법원을 설치하고 기업회생절차(옛 법정관리)에 힘을 싣고 있어 기촉법 연장에 부정적인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법원행정처는 기업 구조조정이 법원의 기업회생절차로 일원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금융위와 법원은 그동안 구조조정의 주도권을 놓고 계속 갈등 양상을 보였다.

 

감사원도 기촉법 개정안의 면책 조항에 대한 반대 의견을 제시하면서 법안 일몰 연장에 제동을 걸었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기촉법 연장안에는 워크아웃 담당 공무원에 대한 면책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감사원은 이에 대해 ‘적극행정 면책 해당여부를 결정하는 감사원의 감사면책권을 침해하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정무위에 제출했다. 감사원은 감사원법과 공공감사법에 면책 규정이 있는데, 개별법에 면책 규정을 추가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왼쪽부터 서울정부청사 금융위원회, 서울 서초구 법원행정처, 서울 종로구 감사원. /각 부처 제공
 
 

부처 간 이견으로 국회 논의가 사실상 중단되자 정무위원들은 금융위에 공청회 개최를 요청했다. 금융위는 이달 중순 기촉법 시행에 따른 기업구조조정 영향을 분석한 공청회를 열 계획이다.

 

정치권과 금융 당국 안팎에서는 기촉법 연장이 이달 가닥을 잡지 못할 경우 내년 4월 총선 이후로 논의가 밀릴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오는 9월부터 국정감사와 예산안 심사를 위한 정기국회가 열릴 경우 기촉법 논의가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한 여야는 총선이 열리는 해에는 이견이 있는 법안 처리에 소극적이다.

 

법안 일몰 시한이 넘긴 이후에도 연장을 결정한 사례가 많아 10월 15일 이후 기촉법이 완전 폐기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정치권과 금융 당국의 전망대로 기촉법 연장 논의가 내년 총선 이후로 밀리면 최소 6개월의 워크아웃 공백기가 생긴다. 이 기간에 일시적 유동성 위기를 겪는 기업들이 줄도산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 과거 기촉법 일몰 연장 지연으로 일부 기업들이 부도를 내고 곧바로 법정관리에 들어간 사례가 있다.

 

일시적 유동성 위기를 겪는 기업들은 신속한 자금 지원이 가능한 워크아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기업회생절차는 거래 기업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사유에 해당하고, 신용장(LC) 거래 중단으로 수출기업의 자금줄이 막히는 등 ‘낙인효과’가 뚜렷하다는 지적이 있다.

 

금융위가 정무위에 제출한 ‘기촉법상 구조조정제도 운영현황 및 성과’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2년까지 관리절차가 종료된 103개사 중 47개사가 부실 해소 등으로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참여기업 중 졸업기업 비율인 워크아웃 성공률은 45.6%로 부실 해소 효과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최근 10년간 IBK기업은행이 주채권은행으로 있는 기업 가운데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157개사 중 19개사(12.1%)만 회생에 성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으로 한계기업이 증가하면서 워크아웃 제도 공백 시 기업들이 기업회생절차가 아닌 파산으로 직행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법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법인의 회생 신청 건수는 1047건으로 전년 대비 12.09% 감소했지만, 파산 신청 건수는 1004건으로 5.1% 증가했다. 기업들이 낙인효과가 있는 기업회생절차를 선택하는 대신 정부 지원으로 버티다가 파산으로 직행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 시중은행 구조조정 담당 임원은 “워크아웃의 경우 금융 당국과 채권단의 부실기업 상시 감시 체계가 구축돼 있고 빠른 의사 결정으로 신속한 자금 지원도 가능하다”며 “법원 주도의 기업회생절차와 채권단 주도의 워크아웃이 상호 보완하며 기업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 맞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