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신평사의 '브릿지론 50% 손실설'… 증권·건설업계 '구조조정' 가능성에 '긴장'
금융업권선 정부 손길 기대하지만
“순차적 ‘구조조정’ 가능성 더 크다”
건설사 “정상사업장도 영향있을 듯”
나이스신평, 롯데·태영·GS·HDC현산 주시
국내 한 신용평가사가 ‘브릿지론의 50% 손실’ 가능성을 전망하면서 건설·증권업계가 긴장감에 휩싸였다. 브릿지론은 부동산 개발사업 과정에서 토지 매입 등 초기 단계에 필요한 자금을 대는 대출로, 이번 전망은 고금리를 전제로 한 것이다. 건설업계에서는 브릿지론에 보증을 선 건설사는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했다. 브릿지론의 손실이 금융업계에 충격을 줄 경우 정상 사업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봤다.
8일 신용평가업계에 따르면 나이스신용평가사는 최근 ‘건설산업 현황 및 최근 주요이슈 점검’이라는 보고서를 발간하면서 주요 모니터링 건설사로 롯데건설과 태영건설, GS건설과 HDC현대산업개발을 언급했다. 롯데·태영건설의 경우 프로젝터파이낸싱(PF) 우발채무가 절대적으로 과다하며, 이 중 미착공 현장 비중이 높다고 봤다.
부동산 PF 시장의 경색 상황이 재차 발생하는 경우 재무안정성이 크게 저하될 수 있다고도 봤다. GS건설과 HDC현대산업개발에 대해선 붕괴사고 관련 행정처분 결정 시기, 수위가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최종 영업정지 처분 시에 기존 채무에 대한 기한이익상실과 PF 유동화 증권의 차환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고 봤다.

권준성 나이스신용평가 연구위원은 “건설경기는 현재 기 착공현장들이 준공에 임박했고, 건설수주가 감소하고 있다”면서 “건설사들은 향후 먹거리 감소 가능성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 신용평가사는 이틀 전 공동세미나를 열면서 “고금리가 장기화될 경우 브릿지론 중 30~50%는 최종 손실로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밝힌 바 있다. 이혁준 나이스신용평가 금융평가본부장은 “기준금리 조기 인하와 부동산시장 회복을 전제로 브릿지론의 만기가 연장돼 왔는데 기대가 무산됐다”면서 “토지 비용을 낮추지 않으면 사업성 확보가 불가능해, 브릿지론 토지의 경매·공매 압력이 커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브릿지론에 대출을 내어 준 금융사의 손실이 불가피하다. 고금리가 길어질 경우 브릿지론의 30∼50%는 최종 손실로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금융업권 중 증권·캐피탈·부동산신탁·저축은행 등이 상대적으로 하방 압력이 클 것으로 나이스신용평가는 내다봤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달 다올투자증권과 하이투자증권의 신용등급 전망을 내렸고, 한국신용평가, 나이스신용평가는 엠캐피탈의 신용등급 전망을 하향했다.
현재 만기연장으로 버티고 있는 브릿지론의 규모는 30조원으로 추산된다. 토지매입 등 주로 사업의 초기 단계에 필요한 자금으로 쓰이는 만큼 차후 수익이 많지만 그만큼 리스크도 크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전체 금융권의 부동산 PF대출 잔액은 133조1000억원이다. 현재 30조원의 브릿지론을 본PF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60조원 가량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금융업계에서는 PF부실을 금융당국에 의지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브릿지론의 손실을 확정지을 경우 중소형 금융사부터 시작해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정책 지원을 기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레고랜드 이후 한 차례 홍역을 치른 금융당국은 이번만큼은 순차적 구조조정이 적절하다는 의중이 큰 것으로 전해진다. 시장이 스스로 옥석가리기를 할 것으로 예상한다는 얘기다. 특히 브릿지론을 받은 뒤 본PF로 넘어가지 못하거나 금융 분쟁으로 멈춰 선 사업장 등에 대해 개별 관리·분석에 나섰다.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는 “PF와 관련해서 부실 가능성이 큰 곳과 아닌 곳을 나눠 관리는 하고 있다”면서 “부실이 확정될 곳에 대해서는 사실상 이미 정리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한 증권사의 임원은 “증권사, 저축은행들은 지금 첫 타자가 되지 않기 위해 고금리로 만기를 연장하면서 버티기에 들어간 상황”이라면서 “‘내가 먼저 구조조정을 당할 이유는 없다’면서 부양책을 기대하는 시각이 강하다”고 했다.

건설업계 상황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부적인 쇼크가 없는 상황에서 대출금리 상승과 공사비 급등이 건설사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어서다. 건설사들의 대출금리가 급등하면서 일부 사업장은 토지 매입을 위해 20%의 금리로 브릿지론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소건설사 중심으로 폐업도 이어지고 있다.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날 기준 폐업한 종합공사업체는 전국 526곳으로 집계됐다. 2021년 305곳, 지난해 362곳이었던 것에 비하면 급등했다.
대형건설사들은 2021~2022년 부동산 호황기에 쌓아뒀던 실적으로 버티고는 있지만 역시 최근의 원가부담 확대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건설공사비지수는 최근 5년 만에 34.8% 상승했다. 원자재 가격이 오른 영향이 크다. 2020년 말 ㎥당 6만7000원였던 레미콘 가격은 이달 9만원 선으로 급등했다. 철근은 2020년 말 톤(t)당 67만1000원에서 지난 6월 말 98만5000원으로 상승했다.
건설사들은 브릿지론 부실이 금융업계에 미칠 파급력에 주목하고 있다. 부동산 호황기 때 정비사업 출혈경쟁 과정에서 브릿지론에 보증을 선 건설사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금융권이 받을 충격 정도에 따라 정상적인 사업장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일부에서는 자금에 여유가 있는 시행·건설사들이 저가에 나오는 토지와 사업권을 사들일 수도 있다.
건설사 관계자는 “소수이긴 하지만 브릿지론에 보증을 선 건설사라면 지금 상당히 불안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 “금융권 중에 익스포저가 큰 곳이 타격을 입게 될 텐데 그러면 해당 금융사에서 PF 등을 받은 사업장도 연쇄적으로 충격을 받게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