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家, 장남 이선호 '마약 파문'…장녀 이경후에 힘 실리나

2019. 9. 2. 17:56일상다반사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남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의 '마약 파문'이 시간이 흐를수록 확산될 조짐이다. 이 같은 조짐에 '장자 승계 원칙'을 고수해왔던 CJ그룹의 경영승계 작업에도 일정부분 파장이 일 것이란 관측이다.

특히 이번 마약 파문으로 이 부장보다 임원 반열에 올라선 누나 이경후 CJ ENM 상무와 묘한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이재현 회장의 결단에 따라 장자 승계 원칙을 깨고 이 상무에 힘을 실어줄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2일 재계에 따르면 이 부장은 지난 1일 변종 마약인 액상 대마 카트리지 수십여 개를 밀반입해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

미국에서 항공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한 이 씨는 항공 화물 속에 액상 대마 카트리지를 숨겨 들어오다 공항세관에 적발됐다. 또 검찰이 진행한 소변검사에선 대마 양성 반응도 나왔다. 

액상 대마 카트리지는 현재 마약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SK그룹과 현대그룹 창업주 손자들이 투약한 것과 같은 종류의 고순도 변종 마약인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 3세 최 모씨와 현대가 3세 정 모씨는 지난달 열린 결심 공판에서 각각 징역 1년 6개월에 1천여만 원 추징이 구형됐으며, 이달 6일 오후 2시 인천지법에서 선고 공판이 열릴 예정이다.

CJ그룹 관계자는 "이 소식을 기사를 통해 접해 관련 상황을 파악 중에 있다"며 "오늘 출근을 했는지, 이 회장의 입장이 어떤지, 어떤 징계가 이뤄질 지 아무 것도 파악된 것이 없다"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 부장이 아직 임원급이 아닌 데다, 조사 결과가 아직 나온 것도 아니어서 내부 징계와 관련해 어떻게 결정할 지 전혀 논의된 바가 없다"며 "관련 내용 파악도 아직 잘 되지 않아서 어떤 입장을 밝혀야 할 지 난감하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녀인 이경후 CJ ENM 상무와 장남인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 [사진=CJ그룹]

 

 

이번 일을 두고 재계에서는 재벌가 방계 혈족이 마약 사건에 연루돼 물의를 일으킨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회사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직계 장손이 마약에 손을 대다 적발된 것은 매우 드문 사례라고 평가하고 있다. 또 이번 일로 CJ그룹과 오너 일가의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이 있을 뿐만 아니라 경영 승계 작업에도 차질이 생길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로 CJ그룹은 장자인 이 부장의 승계를 위한 물밑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었으나, 이번 일로 시계제로 상황에 놓이게 됐다. 

1990년생인 이선호 부장은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종손으로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남이다. 이 부장은 미국 컬럼비아대 금융경제학과를 졸업해 2013년 CJ제일제당에 입사한 후 바이오사업팀 부장으로 근무하다 최근 식품전략기획1팀으로 보직을 옮겼다. 2016년 4월에는 그룹 '코리아나' 멤버 이용규 씨의 딸이자 방송인 클라라 씨의 사촌 이래나 씨와 결혼했으나 같은 해 11월 사별했다. 이후 지난해 10월에는 이다희 전 스카이티비(skyTV) 아나운서와 재혼했다. 

이재현 회장은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의 장손으로, 고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의 아들이다. 이 회장은 슬하에 1남 1녀를 뒀다. 지난 2013년 600억 원대 탈세·횡령·배임 등 혐의로 구속됐으며, 2016년 광복절 특사 때 사면 석방됐다. 현재 만성신부전증과 근육이 위축되는 유전질환인 '샤르코마리투스(CMT)'를 앓고 있어 재계에선 이 회장이 건강 악화 우려로 경영 승계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일로 CJ그룹의 경영 승계 작업에 제동이 걸리면서 향후 이 회장이 어떤 판단을 내릴 지 주목된다. 이 부장은 현재 CJ그룹의 지주회사인 CJ 지분을 2.8% 확보하고 있으며, 이 부장의 누나인 이경후 CJ ENM 상무도 CJ 주식 1.2%를 보유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CJ그룹은 지난 4월 CJ올리브네트웍스의 올리브영 부문과 IT부문 법인을 인적분할하고, IT부문을 CJ주식회사의 100% 자회사로 편입했다. CJ올리브네트웍스는 이 부장과 이 상무가 지분을 보유하고 있던 곳으로, 그룹 경영권 승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관측됐던 계열사다. 이 부장은 CJ올리브네트웍스 지분 17.97%, 이 상무는 6.91%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 부장과 이 상무는 CJ올리브네트웍스 분할 뒤 주식교환으로 CJ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이 일반적으로 지분을 늘리려면 장내 보통주를 매입하거나 이 회장이 보유한 지분을 상속 또는 증여받아야 한다. 이 회장은 CJ 지분 42.07%를 갖고 있다. 상속세 또는 증여세의 세율이 최대 65%인 점을 감안하면 이 부장이 이 회장으로부터 CJ 지분을 물려받기 위해서는 최대 8천억 원의 세금을 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CJ 신형우선주가 지난달부터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돼 거래되면서 CJ가 이 부장의 경영 승계 작업에 신형우선주를 활용해 상속 부담을 줄일 것이라는 주장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며 "시민단체들이 '편법'이라고 주장하며 좋지 않은 시각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이 부장의 마약 문제까지 더해지며 경영 승계 작업도 당분간 속도를 내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왼쪽부터) 이미경 CJ그룹 부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사진=CJ그룹]

앞서 이재현 회장은 이미경 CJ그룹 부회장과 '남매 경영'을 펼쳐왔다. 이에 따라 CJ그룹 안팎에서는 선대의 이 같은 경영 스타일을 이 부장과 이 상무가 재현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이미 재계에서는 이 상무가 고모 이미경 부회장과 유사한 행보를 보일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그러나 이번 이 부장의 '마약 스캔들'로 일각에서는 '장자 승계 원칙'을 고수했던 CJ그룹의 경영 승계 작업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 부장의 이미지가 상당히 실추된 데다, 최근 재계에 '남아선호'가 짙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만큼 '여성 친화 기업'으로 주목 받는 CJ그룹이 향후 이 상무를 리더로 택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재계 관계자는 "코오롱을 비롯해 롯데, LG, CJ를 포함한 범 삼성가 등 대부분의 대기업들이 남아선호 사상의 영향을 받아 여성의 경영권을 배제하는 경우가 많다"며 "최근 재계가 여성들이 고위직으로 올라가는 길을 막는 '유리천장'을 깨기 위해 노력한다고 하지만, 경영권 승계 문제에 있어서는 철저히 '장자승계-남아선호' 원칙을 고수하며 위선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부장의 일탈로 '장자 승계 원칙'을 바탕으로 경영 승계에 속도를 내고자 했던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계획이 모두 차질을 빚게 됐다"며 "이번 일로 이 부장의 그룹 내 역할이 축소되는 대신, 딸인 이경후 상무뿐만 아니라 이 상무의 남편인 정종환 CJ 상무 역시 중심축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