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페이 도입 앞두고… 현대카드 대표의 ‘석연찮은 퇴진’

2022. 9. 19. 18:18카테고리 없음

현대카드가 최근 중요한 사업을 앞두고 혼란을 겪고 있다. 수천억원을 투입해 애플과 간편결제서비스인 ‘애플페이’의 국내 독점 계약을 맺은 뒤 서비스를 준비 중인 가운데, 대표이사가 갑작스럽게 사임해 안팎에서 무성한 뒷말이 나오는 상황이다.

 

 

                                                                       현대카드 사옥 모습./뉴스1
 
 

현대카드는 지난 13일 김덕환 대표이사가 9일 부로 자진 사임했다고 공시했다. 지난해 4월 이사회에서 대표에 선임된 지 불과 1년 6개월 만에 자리를 떠난 것이다.

1972년생인 김 대표는 현대자동차그룹 출신이 아닌 외부 인사인 데다, 카드업계에서 가장 나이가 젊은 최고경영자(CEO)로 주목을 받았던 인물이다. 지난 2011년 계열사인 현대캐피탈 이사로 합류한 그는 2016년 현대카드 상무이사, 2018년 카드 부문 대표를 거쳐 지난해부터 현대카드를 총괄 지휘해 왔다.

 

보수적인 금융업계에서 흔치 않은 ‘40대 CEO’로 기대를 받았던 김 대표가 갑작스럽게 자리를 떠난 이유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다. 현대카드도 ‘일신상의 사유’라고만 공시했다. 현대카드 안팎에서는 김 대표가 담당 비서에게 부적절한 처신을 해 징계성 사임 조치를 당한 것이라는 얘기가 많았는데, 회사 관계자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카드업계 일각에서는 김 대표의 사임 이유를 두고 오너 일가인 정태영 부회장과의 불화 때문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정 부회장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둘째 사위로 2003년부터 현대카드·현대캐피탈을 맡아 지금껏 회사를 키워온 인물이다.

 

앞서 지난달에는 계열사인 현대커머셜의 이병휘 대표가 ‘일신상의 사유’로 사임한 바 있다. 지난해 4월 선임된 이 전 대표 역시 1년 4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금융 시장의 기대를 받았던 CEO들이 잇따라 짧은 시간만 버틴 채 회사를 떠나자, 이들과 정 부회장의 불화설이 카드업계 일각에서 나오게 된 것이다.

 

정 부회장도 이 같은 뒷말을 의식한 듯 CEO들이 잇따라 이탈한 데 대한 복잡한 심경을 최근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지난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하루하루가 귀중하고 힘들지. 아무 일 없이 편안하게 지나가면 웬일인가 싶고, 무슨 일이 있으면 오늘은 왜 이리 험한가 싶고”라고 글을 올렸다.

 

김 대표의 갑작스러운 사임 배경에 특히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최근 실적 부진과 사업 구조 변화로 흔들리는 현대카드의 상황과 맞물려 있다.

현대카드는 신한카드·KB국민카드·삼성카드 등 이른바 카드업계 ‘빅3′를 시장 점유율에서 좀처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성장세마저 둔화하는 상황이다. 특히 올 상반기에는 순이익 기준으로 카드업계 4위마저 롯데카드에 내주며 자존심을 구겼다.

 

전 임직원이 단합해 경쟁력 제고에 나서야 할 현대카드가 이처럼 급박한 상황 속에서 굳이 대표를 교체해야 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냐는 의문이 업계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수진 야놀자 총괄대표(왼쪽),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 캠핑 텐트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현대카드는 야놀자의 플랫폼 운영 역량을 더한 여행·레저 전용 ‘야놀자 PLCC’ 카드를 출시하기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현대카드 제공
 
 

특히 현대카드는 최근 둔화되는 성장세를 회복하기 위해 중대한 ‘승부수’를 던진 상황이다. 세계 1위 스마트폰 제조사인 애플과 손잡고 애플페이의 국내 도입에 나선 것이다.

현재 현대카드는 애플과 1년간 애플페이의 국내 배타적 사용권을 골자로 한 독점계약을 마무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11월부터 사전예약을 통해 애플페이 관련 신용카드 판매를 목표로, 대형 밴(VAN)사 등 협력사들과 서비스에 필요한 NFC 결제 단말기 제조와 시스템 개발 작업에 착수한 상황이다.

 

카드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현대카드가 애플페이 도입을 위해 쓰는 돈은 수천억원 수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카드는 NFC 결제 단말기 보급 비용 대부분을 부담할 가능성이 큰데, 애플에 지급해야 할 로열티까지 합치면 이에 따른 금액만 4000억원 수준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지난해 현대카드의 전체 순이익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애플페이 도입을 위한 인프라 구축과 마케팅 등 중대한 의사 결정이 필요한 상황에서 이를 지휘할 CEO가 없다는 것은 큰 악재가 될 수 밖에 없다. 현대카드는 앞으로 소집될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를 신규 선임해야 하는데, 아직 후임 대표는 정해지지 않았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수천억원을 투자한 만큼 현대카드는 애플페이와 맺은 독점 계약 기간에 최대한 많은 수익을 거둬야 한다”며 “회사의 명운을 건 승부수를 띄운 상황이라, 하루라도 빨리 의사 결정의 중심이 될 새 대표를 뽑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