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13. 12:37ㆍ카테고리 없음
경남 고성 SK오션플랜트 O자형 파이프 생산
대만 수출용 ‘고정식 재킷’ 출격 대기중
“일자(一)형 하이텐스틸(고강도 강철)을 롤 벤더라 불리는 벤딩머신에 넣고 돌돌 말아요. 그럼 처음엔 알파벳 J모양이 됐다가 C모양이 됐다가 O모양이 됩니다. 일명 ‘JCO공정’이라고 부르죠. 이렇게 만들어진 O자형 파이프(강관)은 해상풍력 발전기를 지탱하는 골격인 하부구조물(재킷)의 래그(다리)가 됩니다. 이러한 강관을 자급자족 할 수 있는 기술과 시설을 제대로 갖춘 곳은 국내에서 저희 밖에 없습니다.” (전명우 SK오션플랜트 풍력생산본부장)

지난 8일, 서울 김포공항에서 출발해 사천공항에 내려 45분 남짓 자동차로 이동하자 바다를 품은 내산일반산업단지가 위용을 드러냈다. 경상남도 고성군 동해면에 있는 이 곳은 옛 삼강엠엔티의 자취를 걷어내고 SK오션플랜트로 새 출발 하기 위한 준비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안전모와 작업복도 바뀐 사명으로 교체 작업 중이었다.
산업단지 오른편에는 통유리로 된 사옥이, 왼편에는 실제 재킷을 제작하고 조립하는 공장(어셈블리 샵, Assembly Shop)이 위치했다. 공장 앞 공터에는 수십개의 강관들이 재킷으로 태어나기 위해 나란히 줄을 서 있었다.
이 곳에서 만난 전 본부장(전무, 66)은 자신감에 찬 표정이었다. 현장 경력만 45년차인 전 본부장은 해상풍력 구조물 제작 뿐만 아니라 설치까지 경험한, 업계에서 찾아보기 드문 전문가로 통한다.

그를 따라 공장 내부로 들어가 뒤편으로 나가자, 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부두가 펼쳐졌다. 이 부두를 통해 완성된 재킷이 배에 실려 발주처로 옮겨진다. 마침 대만으로 수출될 5개의 재킷들이 선적을 기다리고 있었다. “배에 실릴 때도 서있던 모습 그대로 우뚝하게 싣고 간다”는게 전 본부장의 설명이다. 고개를 들어 재킷의 상부를 보니 파란 바다를 배경으로 해서 그런지, 유독 노란색 페인트가 선명해 보였다. 맞은 편에는 주황색 ‘골리앗 크레인’이 공사 현장을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SK오션플랜트는 재킷을 자체 제작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회사다. 재킷은 바닷물 속에 고정되는 3개의 래그(다리)와 그 위로 래그를 덮는 가오리 모양의 철판(플레이트)이 뚜껑처럼 덮여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래그는 JCO 공정으로 만들어진 여러 개의 단관(短管, 길이가 짧은 강관)을 쌓아 올려 만든다.
강관은 바닷물에 쉽게 부식되지 않아야 하고, 태풍 등 강력한 바람이 불 때 끄떡없어야 하고, ‘윙윙’ 돌아가는 블레이드의 장력도 견뎌야 한다. 전 본부장은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경쟁력”이라며 “SK오션플랜트의 전신인 삼강엠엔티는 20년간 미국, 남미, 유럽, 동남아 등 전 세계로 관과 복관을 수출해왔다”고 설명했다.
샵 내부 한쪽에선 벤딩 머신이 돌아가고 다른 쪽에선 O자형 모양의 파이프를 용접하느라 근로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강관 기술은 다른 곳에서 따라잡을 수 없는 ‘까다로운 공정’으로 통한다. 현대스틸산업이나 세아제강 등 보다 규모가 작은 기업에서 일부 제작하지만 두께가 얇고 소량이다.

무엇보다 O자형으로 완성된 관을 안팎에서 각각 별도로 용접해야 하는데, 이를 ‘문제 없이’하는게 특별한 기술이다. 아주 미세하게 공극이 있으면 부식이 빨라진다는 점에서 초음파(UT 테스트)와 철가루(마그네틱 테스트)를 이용한 실험을 하고, 여기서 통과된 관들만 재킷으로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모기업인 SK에코플랜트가 SK오션플랜트를 인수하면서 업계에선 ‘신의 한수’라는 말이 돌았다. SK에코플랜트는 건설사에서 환경에너지 기업으로 탈바꿈하겠다는 포부 하에 작년 한해만 14개의 기업을 인수했다. 총 투자금액만 2조원을 넘는다. 이 가운데 SK오션플랜트는 대표적인 ‘효자 종목’으로 통한다.
SK오션플랜트는 작년 9월, 자회사로 편입(주식매매계약 체결은 2021년 11월)된 이후 매출을 끌어올리는데 톡톡히 기여했다. 대만 시장에서 1조3410억원 규모의 공사를 수주하면서, 모기업의 전체 해상풍력 수주 누계를 총 1조4445억원으로 끌어올렸다. 대만 시장 마켓 쉐어(점유율)는 51%에 달한다.
작년 당기순이익도 280억원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SK오션플랜트는 2022년 연결기준 매출 6918억원, 영업이익 719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각각 37.5%, 172.2% 증가했다. 최근 사명 변경을 통해 SK를 달게 되면서 시너지 효과를 누릴 것으로 보인다.
SK오션플랜트는 현재 아시아 지역에서는 단연 해상풍력 1위 기업으로 꼽힌다. 최근 일본에 재킷 수출 성공에 이어 향후 미국과 호주 등 시장을 넓히겠다는 포부다. 사명 중 ‘오션’은 향후 해상풍력 시장에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단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SK오션플랜트는 ‘신(新) 야드’로 불리는 양촌·용정지구 부지 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내산지구가 1지구, 옛 삼강엠엔티 자회사인 삼강 S&C 부지(장좌지구)가 2지구, 여기에 새로 마련할 부지가 바로 3지구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문수철 RM본부 본부장은 “3공장은 연간 약 65만톤의 고정식 뿐만 아니라 부유식 하부구조물 생산까지 가능한 부지”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부유식 재킷은 향후 해상풍력 발전 시장에서 유망 분야로 떠오르고 있다. 부유식은 고정식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심과 해저면 형태의 영향을 덜 받는다. 또 연간 발전량이 우수하고, 모든 장소에 동일한 설계로 적용할 수 있다. 예인선을 이용하는 설치 비용뿐만 아니라 해체 비용도 적게 든다.
아직까지 국내 기업 중 부유체 상용화에 성공한 곳은 없다. 다만 SK오션플랜트가 이미 고정식 하부구조물 설비 기술력이 있다는 점에서 이른바 ‘수주만 되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기술력은 이미 충분하다”는게 전 본부장의 설명이다.
KDB미래전략연구소 산업기술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오는 2025년까지 육상풍력 신규 발전용량 증가율은 15.7%에 불과하다. 반면 해상풍력의 증가율은 113.4%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남기철 경영지원센터 센터장은 “SK오션플랜트로 사명 변경 이후 현장 근로자들의 의욕도 고취되고 사기도 진작된 분위기”라며 “아시아 시장을 넘어 세계 4위의 해상풍력 기업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